"의사보다 돈 더 벌게 해줘야"…삼성·LG 탈출하는 엔지니어들 [황정수의 반도체 이슈 짚어보기]

입력 2024-03-12 07:33   수정 2024-03-12 09:07


애플, 구글, 테슬라, 인텔, 엔비디아. 실리콘밸리 빅테크와 대형 반도체기업에 일하는 한국인은 얼마나 될까. 2021년 미국 실리콘밸리 특파원으로 부임했을 때 놀란 점은 현지 기업에서 일하는 한국인 엔지니어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다. 큰 기업엔 적게는 수십명, 많게는 1000명 가까운 한국인이 일했다. 샤오펑, 니오 같은 중국 전기차를 알게 된 것도 현지 법인에 근무하는 한국인을 만난 뒤부터였다.
미국 이직 준비하는 韓 대기업 엔지니어들
한국인 엔지니어들의 출신 배경도 예상 밖이었다. 캘리포니아공과대(칼텍), 스탠퍼드대 등 명문대에서 박사를 마치고 바로 취업한 사람도 있었지만, 대다수는 한국 대기업 출신이었다. 그중에서도 삼성전자, 현대자동차, LG전자 등 한국 기업 본사 근무 경력을 인정받고 미국으로 건너간 엔지니어들 많았다.

실리콘밸리 엔지니어 생활이 순탄치만은 않다는 게 만나본 한국인들의 공통된 얘기였다. 백인은 한국인을 ‘시골 촌뜨기’ 취급하고, 인도인과 중국인들은 똘똘 뭉쳐 한국인을 견제한다고 했다. 의사소통이 편치 않으니 할 말을 다하지도 못했다.

그래도 엔지니어들이 아둥바둥 버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. 첫번째는 한국보다 월등하게 좋은 근무 환경이다. 웬만한 한국 기업보다 2~3배 많은 연봉에 글로벌 IT 산업의 최첨단에 서 있다는 자부심, 기술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포부 등이 이들의 버팀목이 된다. 여기에 자녀들에 살아 있는 영어를 배울 기회를 주고, 큰 세상을 보여준다는 만족감도 크다고 했다.

이런 메리트 때문에 지금도 삼성전자, SK하이닉스, 현대자동차, LG전자 소속의 적지 않은 한국의 우수 엔지니어들이 ‘미국 이직’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.
엔지니어 유출은 큰 타격
한국 핵심 엔지니어들의 미국 이직은 국가 경쟁력에 타격을 줄 수 밖에 없다. 2000년대 초반 한국 기업을 인수하고 엔지니어를 유치해 패권을 쥐게 된 중국 디스플레이 산업을 보면 알 수 있다. 당시 중국 BOE는 현대전자 LCD사업부가 전신인 '하이디스'를 인수했다. 엔지니어들도 빨아들였다. 지금 BOE는 세계 1위 디스플레이업체다.

그렇다고 국가가 나서 이직을 원천 차단하는 건 불가능하다. 최근 법원의 전직금지 가처분 인용으로 알려진 SK하이닉스 개발자의 마이크론 이직 사례처럼 위법 행위는 엄단해야 하는 게 옳다는 평가가 우세하다. 국가 핵심 기술의 불법 유출 가능성 때문이다.

하지만 법을 어기지 않고 미국으로 가는 엔지니어들까지 '기술 유출' 의혹을 덧씌우고 비난하는 건 기본권 침해라는 지적이 나온다. 꿈을 안고 삼성전자에서 애플, SK하이닉스에서 엔비디아, 현대차에서 테슬라로 이직하는 걸 막는 건 '상식 밖'이다.
한국을 '엔지니어 천국'으로 만들어야
인재 유출을 막는 해법은 뭘까. 산업계와 학계에선 한국을 실리콘밸리에 못지않은 ‘엔지니어들의 천국’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. 그러기 위해선 엔지니어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는 건 물론 이들을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도 조성해야 한다. 의대에 밀려 빈사 상태인 공대부터 살려야한다는 이야기도 있다.


이런 노력이 쌓여야 ‘국가 대항전’ 형태로 진행 중인 글로벌 인공지능(AI)·반도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. 산업계 관계자는 "'엔지니어가 의사보다 더 많은 보상을 받은 시스템'이 구축될 때 한국의 제2 전성기, 한국판 엔비디아가 탄생할 수 있다"고 말했다.

황정수 기자 hjs@hankyung.com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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